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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환해망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10-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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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인 강헌 대중음악평론가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64세. 21일 가요계에 따르면, 고인은 지병이었던 심장 관련 질환으로 전날 오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이사장의 별세 소식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언제나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예술이 주는 치유와 성장의 힘을 믿으셨던 원장님의 걸음걸음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이정표가 되었다”며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그토록 사랑하셨던 음악과 예술이 가득한 하늘에서 부디 평안한 안식에 드시기를 소망한다”고 추모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처음에는 소설가를 꿈꿨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이후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출발은 영화계였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상업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와 ‘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를 썼고, TV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에도 참여했다. 대중음악평론가로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린 것은 가수 김현식에 관한 글을 쓰면서다. 후배의 부탁으로 시작한 평론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릴게임팡게임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그는 탄탄한 음악적 지식과 거침없는 필력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오랜 동료인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고인을 두고 “수려한 글로 해당 분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회고했다. 당시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여러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하며 대중음악 평론을 이끌었다. 특히 서태지와 신해철은 고인의 평론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94년 문화계간지 ‘리뷰’ 창간호에서는 서태지와 만나 록 음악과 립싱크, 샘플링, 방송가의 부조리 등을 깊이 있게 논했다. 음악 자체뿐 아니라 산업과 사회를 함께 들여다본 시도였다. 신해철과의 인연도 남달랐다. 2014년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뒤 고인은 2018년 ‘신해철: 인 메모리 오브 신해철 1968-2014’를 펴냈다. 뮤지션의 음악과 삶을 되짚으며 그가 한국 대중음악에 남긴 의미를 기록했다. 활동 무대는 평론에 한정되지 않았다. ‘예감’, ‘상상’, ‘리뷰’ 등 문화계간지를 동료들과 만들었고, 홍익대·성공회대·단국대·성균관대 등에서 약 20년간 대중음악사를 가르쳤다. 모바일 바다이야기5만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등의 콘서트를 기획했으며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 음악극 제작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한국 대중문화를 시대의 기록으로 바라봤다. 2016년 문학동네 유튜브 콘텐츠에서 “우리의 대중문화는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우리 대중들의 일상의 몸부림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중문화사를 ‘이식과 독립의 불타는 연대기’로 규정한 그의 시선에는 음악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읽어내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삶과 운명을 탐구하는 명리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42세 때 대동맥이 찢어져 2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일을 계기로 명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2015년 ‘명리: 운명을 읽다’를 출간한 뒤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 등 관련 저서를 펴냈다. ‘음악의 파장 공명의 파장’,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생의 찬미’ 등도 남겼다. 문화 행정가로서도 활동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5대 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됐다. 별세 직전까지 조선일보에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를 연재하며 음악과 시대를 연결하는 글쓰기를 이어갔다. 유족으로는 아들 동재씨와 딸 소이씨가 있다. 빈소는 21일 오전 9시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용인 평온의 숲이다. 수려한 글로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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