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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종종 자신의 이름을 배반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오래전의 풍경을 불러오거나, 낡은 옷의 주름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를 발견할 때가 그렇다. 벽에 걸린 거울은 방을 비추는 대신 그곳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사물은 제 몸을 벗어나지 않고도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사물의 변신술이라고 불러도 될까.
어느 날 거북의 등껍질에서 오래된 건물의 지붕을 발견했다. 단단한 껍질 위에 반복되는 무늬는 누군가 설계한 평면 같았다. 작은 면들이 서로를 밀어내거나 끌어안으며 몸을 감싸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거북에게 집은 몸의 외부에 마련된 장소가 아니다. 집이 곧 몸이고 몸이 곧 집이다. 집을 입는다는 것. 옷을 짓는다는 것. 건물과 옷이 서로의 문법을 빌려 쓴다면, 건축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가. 종이 위에 그려진 전개도는 아직 상자가 아니지만 상자가 될 모든 조건을 갖고 있다. 선을 따라 접으면 평면은 입체가 되고, 다시 펼치면 입체는 평면으로 돌아온다. 접힌 선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형상과 이미 지나온 형상이 함께 존재한다. 사람에게도 이런 전개도가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직업이나 성격, 관계 속의 역할로 규정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아직 접히지 않은 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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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면은 평생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본다. 커튼은 길이 되겠다고 하고, 옷은 집이 되겠다고 하며, 벽은 걸어다니겠다고 한다. 거울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전개도는 영원히 접히지 않은 채 남겠다고 고집한다. 꽤 곤란한 세상이다. 동시에 조금은 궁금한 세상이다. 사물의 다른 생애는 새로운 몸을 얻는 일이 아니라, 같은 몸으로 다른 가능성을 살아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살아보지 않은 생애가 남아 있을까.
박세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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