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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광태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10-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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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근 목사가 지난 15일 경기도 포천 행복한교회에서 기타를 들고 복음성가 실로암을 썼던 1981년 12월 이야기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40년이 훌쩍 넘도록 성도들의 가슴을 울려온 복음성가 ‘실로암’이다. 특히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군인교회에서 이 찬양을 목놓아 불러보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장병들의 독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원곡의 차분함을 뒤흔드는 군대 특유의 빠른 변주와 뜀박질하며 외치는 떼창이 결합하면서 통제 속 장병들이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심리적 해방구’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사랑받는 이 노래는 긴 세월 ‘작자 미상’이나 번안곡으로 오인된 채 주인을 잃고 떠돌았다. 정작 창작자는 찬양과는 먼 곳에 있었다. 신학교를 떠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경을 헤매던 말기 암 환자로 곡절을 겪고 목회지로 돌아온 신상근(64) 포천 행복한교회 목사가 주인공이다. 지난 15일 교회에서 만난 신 목사의 서재 앞에는 기타가 놓여 있었다. 고등학생 때 서울 신당동 악기.에서 처음 기타를 장만한 그는 명동 예수전도단(YWAM) 화요 모임을 쫓아다니던 ‘찬양 키즈’였다. 결정적 순간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0년 겨울, 대학 예비고사를 마친 뒤 작정한 ‘40일 새벽기도회’ 끝자락에 찾아왔다. 양귀비 릴게임 당시 출석하던 순복음옥수교회 최기순 담임목사가 선포한 요한복음 9장 말씀이 도화선이 됐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이가 예수님 말씀을 따라 실로암 못에서 씻고 눈을 뜬 뒤 영적 어둠에서도 벗어난 구원의 사건을 담고 있다. “장래 걱정으로 막막하던 때였는데 말씀이 벼락처럼 가슴을 쳤습니다. 새벽 제단에서 곧바로 시상이 떠올라 빈 공책에 적어 내려갔죠.” 그렇게 그해 12월, 스무 살 청년의 손끝에서 실로암 1절이 탄생했다. 현재 불리는 2~3절은 훗날 성도들의 입을 타며 자연스레 덧붙여진 노랫말이다. 이후 장로회신학대에 진학한 신 목사는 신설된 교회음악과 학생들과 어울리며 음악적 감수성을 넓혔다. 실로암은 선교 동아리 ‘장신선교단’의 단가로 채택되며 널리 알려졌다.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희미하던 때였다. 제대 후 길거리 리어카 테이프에 버젓이 ‘작자 미상’으로 적힌 것을 본 대학 동기 이준용(전 TBN 한국교통방송 본부장)씨가 “네 찬양을 관리해주겠다”며 아가페출판사 찬양집 1번에 실어준 뒤에야 비로소 그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삶은 순탄치 않았다. 생계를 위해 복학을 미루고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되면서 유명 작사가이자 매부였던 고 정두수 선생의 회사에서 15년간 일했다 달팽이게임추천 . 마음 한구석엔 늘 부르심을 외면했다는 빚진 마음이 있었다. 혹독한 상환 청구서는 1999년 5월에 날아들었다. 이름도 낯선 희소암 ‘악성 섬유성 조직세포암’ 말기였다. 암세포가 이미 전이돼 수술조차 불가능했고 의사는 “두 달 남았다”고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사경을 헤매던 그를 살린 건 영적 결단이었다. 출석하던 서울 신일교회 이광선 목사가 이른 새벽 병실을 찾아 앙상하게 마른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신 집사, 이제 신학 다시 해라”며 단호하게 권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비로소 무릎을 꿇었다. 순천향병원에서 6명이 참여한 신약 임상시험에 매달린 지 20개월, 함께했던 환자 5명이 세상을 떠나는 동안 오직 신 목사만 살아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극심한 항암치료로 심장과 신장이 망가지고 기립성 빈혈이 찾아왔지만 신학의 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40세가 되던 2001년 장신대 3학년에 복학했다. 신 목사는 자신의 찬양이 군부대와 집회에서 울려 퍼질 때마다 눈시울을 붉힌다고 했다. “보잘것없는 노래가 청년들에게 아름답게 쓰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이켜보면 실로암은 제게 주신 가장 큰 생명의 선물이었습니다. 절망의 수렁에 빠질 때마다 ‘아, 또 어두운 밤이 찾아왔구나.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새벽을 예비해 두셨다’는 믿음으로 버텼으니까요.” 쿨접속방법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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